< 책 리뷰 > 배를 엮다 - 미우라 시온

2017. 4. 4. 11:40Book & Comics

 

 

배를 엮다 - 미우라 시온 (은행나무)

 

<배를 엮다> 라는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책은 아니였습니다.

우연히 어느 블로그에서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글을 읽은 것이 첫만남이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 소개 정도의 글이었지만, 순간 이거는 well made다 라는 촉이 발동하여 찾아보기 시작했고, 어느새 퇴근하고 1순위로 챙겨볼 만큼 푹 빠져 들었습니다.

 

<출처 - www.daum.net>

 

한참을 매력적인 내용과 애정이 가는 캐릭터의 팀워크를 즐기면서, 이웃나라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일본 영화산업은 열정이 차게 식은 것 같아 보입니다만...)

이 후 팬심이 동하여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동일한 내용의 원작 소설이 있으며, 소설이 큰 인기를 얻어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것, 재차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어, 저의 취향이 다행히도 대중의 입맛과 비슷함에 안도(?)했습니다. 처음 맛본 놀이동산의 즐거움이 영원하길 바라는 꼬맹이의 투정처럼, 오랜만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가 끝나감이 아쉬웠던 저에게 계속 즐길거리가 남아 있음에 기뻐했습니다.

 

<출처 - www.daum.net>

 

애니메이션의 완결까지 정주행 후, 잔잔하게 남은 감동에 취해 미리 준비해둔 영화까지 연속으로 관람했습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제법 다른 느낌으로 표현되는 영화도 즐기기에는 충분했었지만,(원작 소설 - 영화 - 애니메이션) 순으로 제작되어, 아직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평하기에는 영화보다 애니메이션의 심리묘사나 섬세한 표현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영화까지 보고 난 후에는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더 커졌습니다. 

이 때까지 제가 알고 있던 일본 작가라고는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등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라 이름을 알렸던 작가들(대중의 취향 테스트에 통과한 작가, 어느정도 퀄리티가 보장된 작가)이 전부였습니다. 스스로 알고 있는 미우라 시온이라는 작가에 대한 정보는 작았으나, 앞서 즐겼던 원작을 가공한 작품들로 인해 작품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미우라 시온 작가는 다른 작품으로 일본에서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아쿠타가와상이 순수문학에 수여되는 반면, 나오키상은 주로 대중 작가의 통속 소설에 수여된다. 출처-네이버)과 <배를 엮다>로 서점대상 (2004년 설립된 일본의

문학상

이다. 일반 문학상과 달리 작가와 문학자가 전형에 참가하지 않고, 신간을 판매하는 서점(인터넷 서점 포함) 직원의 투표로 후보와 수상 작품을 결정한다. 출처-위키백과)을 수상하여,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작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개인적 사견으로는 권위를 내세우는 문학상들이 정말 순수한 문학적 가치를 위한 수상인지, 단지 기존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마케팅 행위인지 의심스럽지만, '한명이라도 더 형편이 어려운 신인작가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하며 마지못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책 소개는 이정도로(충분히 엄청 길지만....) 마치고, 책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책의 주된 내용은 종이 국어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스토리를 자세하게 요약하거나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책을 읽는 재미도 반감 시킬 뿐만 아니라, 제 설명으로 인한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독서 중에 문뜩 떠오른 생각이나, 다 읽고나서 다시 한번 돌이켜 보고 싶은 부분들, 또는 책의 내용이 촉매가 되서 의미를 생각하게 된 내용들 등등을 다루어 볼까 합니다.
 

1. 주인공의 이름에 관한 내용

 

주인공의 성함은 마지메 미쓰야 입니다. 마지메가 이름이고 미쓰야가 성씨를 의미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어의 마지메는 성실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예를 들면, (김 성실) 같은 느낌이 됩니다. 작가의 말장난 같이 보이는 부분이지만, 나중에는 주인공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실하다'라는 평가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의미 같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과거 학생 때는 학생의 성실함(출석 기준) 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포상(개근상)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분야의 두각을 나타내지 않더라도 꾸준히 보통 수준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인내심과 수 많은 반복에 의한 성장을 도모하는 의미 정도로 성실함을 가치있게 여기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현대는 특정 분야를 제외하고는 많은 영역에서 생산과, 유통, 소비의 속도가 빨리짐에 따라 성실하다는 점이 크게 메리트로 작용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성실하다라는 평가에는 진부하다, 고집스럽다, 유행에 뒤쳐진다 라는 평가를 속에 담아 특정 대상의 특별하지 못함, 개성의 부족을 돌려 까는 식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체는 성실하고 착해' 라는 사용이 적합한 예라 생각합니다.

변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민첩하게 대응하거나, 변화의 흐름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흔히 '트렌드 리더'나 '트렌트 세터'라면서 우대 받는 게 사실이지만, 단순 반복의 성실함이 아닌 성장이 내포된 성실함은 과거의 영광을 잃지 않고 여전히 노력의 대가와 타인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찾아보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결과를 만드는 사람들(장인)은 누구하나 성실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의 흐름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뿌리가 깊은 가치를 발견하고 스스로 정진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성실함을 무장한 사람들은 결국에는 한 분야의 대가로서 인정 받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기준점이 되기도 합니다. 재밌게도 대중은 개인적 친분과는 관계없이 대가들에게 호의적이며 친절한 태도를 보입니다. 김연아 선수에 대한 대중의 애정과 지지가 김연아 선수의 남다른 재능이나 화려한 커리어 만이 이유일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메 역시 성장형 성실함에 잘 맞는 한 사람입니다. 그는 언어라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것을 단지 사용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한 단어의 참된 의미, 그것의 유래, 실제 활용 방법에 대한 탐구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15년간 지속합니다. 끈임없이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다처럼, 자꾸만 변화하는 언어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한 배를 만들자라며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는데 인생을 다 바친 마지메와 직장 동료들의 진지하고 헌신적인 태도가 소설(허구)임에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마지메나 그 동료들이 금전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았던건 아니고, 종이 사전이 크게 이익을 내는 상품도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사전 편찬은 그저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닌 일생의 업 이었으며, 1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쓰릴만큼 천천히 하지만 명확하게 형태를 갖춰가는 사전이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농도 깊은 삶의 성취감을 고양시키는 모습에 스스로를 전부 몰입하여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을 가진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카톡 단톡방에 뜬금없이 링크를 던지며, 친구는 물었습니다. '동의하냐?' 링크는 ted talk (특정 주제 대한 10여분 가량의 연설)의 영상 중의 하나였습니다. 동영상의 제목은 <Don't find a job, find a mission>이었습니다. 비몽사몽한 상태라 내용을 대충 건너뛰며 봤지만, 한 개인이 가진 인생의 시간의 절반 이상을 생계를 위한 일에 사용하는 현대인의 낮은 행복도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연사는 처음부터 job을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mission을 발견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라는 내용을 연설하였습니다. 한창 <배를 엮다>를 읽는 도중이었기에 연사의 말이 쉽게 다가왔습니다. 친구에게 했던 대답은 "부분적으론 동의한다" 였습니다. 아직은 저의 mission을 찾는 중이기 때문일지, 그것을 찾을 수나 있을까 하는 의심 때문일지 "부분적으로" 라며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럼 도대체 흔들리지 않을 가치(mission)를 찾는 방법이란 어떤식이지? 라는 질문이 남지만 그에 관한 것은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정리해보겠습니다.)

 

2. 적당히 하는게 뭐 어때서?

 

마지메가 한 가지 일에 특화 된 천재형 케릭터라면, 니시오카는 능글 맞지만 융통성 있고, 센스있는 처세술로 대인관계를 잘 관리하는 정치형 케릭터입니다. 둘다 어느 집단이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있을 법한 사람들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무엇이든 팀워크를 하게 되면, 어처구니 없게도 마치 정해진 공식 같이 유사한 패턴이 생성됩니다. 소수의 실질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능력자, 눈치껏 적당히 맞춰가며 일하는 척을 하는 다수의 보통사람(대부분 효율성을 중요시함), 눈치도 실력도 없는 무임승차자. 이상적인 그룹이라면 구성원 모두가 높은 참여율로 능력자의 역할을 하며 동시에 서로의 관계를 잘 관리하는 정치력도 갖추어 환상적인 시너지반응의 결과를 나타낼 수 있겠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 먹지 않아 보입니다.

 

니시오카 역시 많은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 효율적인 회사원이 었습니다. 적당히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 일처리를 하며, 지나치게 열정적인 것을 촌스럽다 생각하고, 자신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게 아니라면 대부분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그런 사람. '일에 너무 목숨걸지 말자고, 언제나 내 생각데로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일하러 왔으면 밥값만 하면되지, 회사는 자아실현을 위한 장소가 아닌걸.'라는 식으로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적당히 관리하는 사람.

그랬던 니시오카는 마지메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전 편집자에 잘 맞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마지메는 언어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갖고, 타인의 말에 순수하게 반응하며, 사전을 만드는 일에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독특한 사람입니다. 초반의 니시오카는 별 의미 없는 인사치레에도 진지하게 대답을 고민하는 엉뚱한 마지메를 경계합니다. 하지만 이내 마지메의 보통사람 보다는 많이 진지하고 순수한 성격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마지메의 엉뚱함을 이해하고 자주 부족한 부분을 챙겨주는 형 같은 역할을 자처합니다. 서서히 마지메의 열정에 감화되어 니시오카도 그저 생계수단이었던 본인의 일이 의미있게 보이고,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아타깝게도 언제나 그렇듯, 천재와 보통사람이 같은 일을 하면 드러나는 결과에 의해 도드라지는 보통사람의 무능력함이 니시오카를 괴롭게 하고 마지메에 대한 질투심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니시오카는 사전 편찬을 함께 할 수 없게되고, 간접적으로 마지메를 지원하며 그를 응원합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저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니시오카의 반응이나 태도가 자연스럽게 다가왔었습니다. 문득 개인적인 기억을 되돌아 보며, 내가 만난 마지메(능력의 유무와 무관하게 응원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몇 명은 니시오카 처럼 순수하게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고, 또 몇 명은 그러한 마음이 쉽게 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니 저의 대답은 실천력의 차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닿은 저의 <마지메> 들은 본인의 목표를 위해 정말로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꿈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의 결과가 성공적일 때는 노력의 보상이라 여기며 순수하게 축하해 주었고, 실패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 할 수 있기를 응원하였습니다.

반면, 말로만 꿈을 쫒는 사람들도 기억이 났었습니다. 어느 자기 개발서 내용처럼 사람을 만날 때 꿈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 "혹시 꿈이 뭐에요?" "제 꿈은요~~입니다."라며 자기가 꿈을 가진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는 분들. 다음번에 만나도 딱히 그 꿈에 대한 성취나 발전은 나타나지 않으면서 그저 꿈을 쫒는 자기를 좋게만 봐달라는 식의 태도에 점점 그 사람들의 꿈이 가볍게 여겨졌고, 만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전심전력으로 한가지에 몰두하는 마지메와 같은 삶이 절대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욱더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본인 스스로가 마지메가 되는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