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리뷰 >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2017. 4. 24. 16:27Book & Comics

 

책 선정에 특별한 의도는 없습니다만, <배를 엮다>에 이어서 이번에도 일본 소설입니다. 

 

아직 블로그 스타일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을 두서 없이 쓸지, 또는 조금이나마 정보전달의 의미를 가지고 읽은 책에 관한 내용을 담을런지. 심지어 책을 읽고 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독서 후의 생각을 타인과 공감하고 싶은 건지 조차 아직은 모호한 상태입니다.  그저 서평의 횟수가 늘어 조금씩 쌓이다보면, 저 만의 형태를 찾아가지 않을까나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편의점 인간> 독후감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서평도 꿈 보다는 해몽에 가까운 내용이 많이 들어갈 것이라 예상됩니다.)

 

소설을 읽고 나면 아... 괜찮았네..지정도면 재밌었어. 싶은 정도의 책이 있기도하고, 음....그건 무슨의미일까? 왜 그렇게 되버린거지? 결국에는 뭐가 중요한거지? 라며 질문이 많아지는 책이 있습니다. <편의점 인간>은 개인적인 평가로는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었습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막연하게 일본의 프리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에 관한 이야기이겠지 하며 책 표지를 훓어 보다가 책 하단에 있는 '제155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이라는 표시에 시선이 멈췄었습니다. 별로 문학상 팔로워는 아니지만 이런 타이틀을 획득한 작품은 마케팅이 잘되는 편이라 비교적 쉽게 접하게 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작가 본인이 편의점에서 근무중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라는 소개글이 흥미를 유발하였습니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다 보니 자연스레 이건 프리터의 삶이나 편의점의 일상과는 무관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반쯤 읽고 나서야 소설의 배경이 편의점이 아니면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중의 편의점은 이를테면 극대화된 효율성으로 완성된 세계에 가깝습니다.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거의 모든 부분에 메뉴얼(설명서, 업무지시서)가 있어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메뉴얼만 따라도 업무나 월급에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완성'에 가깝기에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직원이 바뀌거나 상품이 교체되거나 하는 변화는 있지만 잠시 스쳐지나가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편의점이란 한결같아 보입니다.

이러한 완성된 시스템이 있기에 조금은 이상한 사람도 이질감 없이 보통의 일상으로 녹아들어갈 수 있습니다. (ex. 드라마 시그널의 연쇄살인범이 편의점에서 근무)

 

소설의 주인공(후루쿠라 게이코) 역시 스스로를 보통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내용 누설을 피하기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본인은 보통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하지만, 특이한 주인공을 감싸준 지극히 보통적인 부모와 여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편의점 알바로의 삶(사회에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증거)을 오랫동안 반복합니다.

보통사람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보통의 무리에 소속되기 위해서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주인공에게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그와 동시에 잘 짜여진 업무 메뉴얼을 따르는 반복 행위가 주인공의 특이점을 가려주며, 어딘가 이상하다 싶은 주인공 조차 사회에서 생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에 정신적 안도감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면 책 한권을 채울 내용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10여년 이상을 보통 사람인척 '변화'하지 않는 후루쿠라가 본질적으로 다름을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하고 눈빛에 의심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선의를 가장한 조언이나 큰 의미 없는 일시적 호기심만 가득한 질문들로 인해 그녀의 일상생활용 가면이 박살나기 시작합니다.

 

<편의점 인간>의 가장 훌륭한 점이라 생각되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는 이질적인 소수의 사람들에게 흔하게 보여주는 태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집단을 형성한 사람들은 그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그렇지만 이견을 용납할 수 없는 그들만의 정답에 가까운 삶의 방식을 모두가 따를 것을 강요합니다.

그것이 보통이 아닌 사람에게는 폭력적일 만큼 선택의 기회조차 박탈한다는 인식도 없는 상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갈 것을 주장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서평을 쓰고 있는 저 역시도 보통사람이라는 사고의 틀에 너무나 익숙해져 자연스레 타인을 평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본소설 속의 내용이었지만 읽는 내내 한국인의 오지랖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다정함이나 선의 등으로 포장한 오지랖(사실 들어보면 크게 도움이 되거나 정말 심사숙고하여 듣는이에게 득이되는 경우는 희박함)이 보통사람들의 기준에는 적합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용상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안해도 상관없는 말들이 오지랖의 기본 구성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학업, 취업, 결혼, 출산, 제테크 등 사회 구성원의 삶의 다양한 부분이 오지랖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타인의 괜한 참견에 질려버린 사람들의 반격으로서 '오지라퍼', '꼰대' 등 참견쟁이들의 행동을 비난하여 경각심을 일으키는 호칭도 일상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타인에게 과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언행이 듣는 이를 불쾌하게 만드는 상황이 그분들의 자발적인 개선으로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기존의 인내하며 들어주던 사람들이 더 이상은 자신들의 보통의 삶 조차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참아줄 여유가 없다는 것을 눈치챘거나, 오지랖에 대한 격렬한 거부반응 앞에 꼰대들이 몸을 사리는 경향을 환영해야 할지가 애매한 상황입니다. 참견쟁이들은 실제로 전투력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작품 내 가장 좋았던 부분을 하나 언급하자면, 작가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었습니다. (작중 통화내용의 한장면) 주인공의 가감없이 속을 전부 드러낸체 솔직한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에 전화기 반대편의 사람은 후루쿠라에게 조금의 희망적일 여지도 없이, 냉정하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대답합니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현실은 니가 생각이나 태도를 바꿔먹던 말던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행동의 결과로 인해서만 바뀐다." 라는 작가의 현실을 대하는 태도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극적인 효과를 위해 현실에 조미료를 치는 작가들과는 달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편의점 인간>을 전문성도 근거도 없이 그저 감정적으로 좋은 책이었다고 평합니다.